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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노래 그사연 번지없는 주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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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한국대중음악박물관
댓글 0건 조회조회수: 1,340회 작성일 19-02-19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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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민족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35년간 일제 식민통치의 치욕적인 시대를 살아냈다. 그 소용돌이 속에서 피폐한 현실을 견뎌낸 여러 저력 중에 대중가요가 차지한 에너지를 그 누가 폄훼(貶毁)하랴. 우리 민족의 자주와 독립을 지향한 갈망은 대중가요를 통해 민족적 저력으로 승화했다.

‘번지 없는 주막’, 이 노래가 그렇다. 대중가요의 주인공은 대중이고 그 대중은 우리 민족이다. 이 노래는 1940년 처녀림이 가사로 엮고, 이재호가 일제 음반사전검열 제도의 틀 속에서 가락을 지어 20대 청년 백년설이 불렀다.



문패도 번지수도 없는 주막에

궂은비 내리던 그 밤이 애절쿠려

능수버들 태질하는 창살에 기대어

어느 날짜 오시겠소 울던 사람아

(백년설의 ‘번지 없는 주막’ 1절)




주막은 탄막(炭幕)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 조령원 등지의 쉬어가는 참(站)마다 참점(站店)을 설치해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했다. 도시의 객주와 여각이 시골의 주막과 비슷한 구실을 했다.

19세기 후반에는 촌락 10~20리 사이에 한곳 이상의 주막이 자리 잡았고, 5일장이 열리는 곳이나 역(驛)·나루터·광산촌 등에 주로 있었다. 이는 춘추시대 제나라에서 친구 포숙아의 추천으로 재상이 된 관중이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30리마다 지방 상인을 접대하는 객잔(客棧)을 설치했던 것과 유사하다.

이런 주막이 있는 동구(洞口)에는 어김없이 원로 느티나무가 서 있었다. 알성급제를 향해 한양으로 가는 이정표였고, 지금은 천연기념 보호수다. 당시 보부상(褓負商)·행상(行商)들의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이들을 위한 주점·주막이 덩달아 발달했단다.

우리나라 마지막 주막은 경북 예천의 삼강주막이다. 내성천·금천·낙동강 세 물줄기가 모이는 곳이라고 해서 삼강(三江)이라고 했다. 경남 김해에서 경북 안동 하회마을까지 소금배가 가는 길목이었고, 문경새재를 넘어 서울로 가는 통로였다. 이곳의 마지막 주모는 유옥연 할머니. 그녀는 2005년 90세로 돌아가시기 전까지 50여년 동안 삼강주막을 지켰다.
 

유차영<솔깃감동스토리연구원장, 한국콜마 상무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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